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검도 vs 해동검도 삼대논쟁 (문단 편집) === 정통성 논쟁 === [[해동검도]] 측이 검도를 공격하는데 쓴 가장 큰 떡밥. 간단히 말해서 검도는 독립군 학살하던 침략자 일본군의 무술이고, 해동검도는 고구려 시절부터 전해내려온 고유의 우리 검도라는 논리였다. 해동검도 측이 자부심을 가지는 가장 큰 원천이자, 지금도 일부 유효 하다. [[검도]]는 80년대까지 굳이 역사나 그런 것을 건드리지 않고 그냥 조용히 수련하는 것을 방침으로 삼았다. 누가 봐도 일본 옷인 [[하카마]]를 입고 [[죽도]]와 [[호구(장비)|호구]]를 쓰기 때문에 가린다고 해도 가릴 수도 없는데 반일감정을 굳이 자극해서 손해를 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. 수련자들이나 일반인들도 일본의 무술임을 잘 알았지만 국내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, 대다수 일반인들은 비싼 운동으로 알려진 검도보다는 [[쿵푸]]나 [[태권도]], [[합기도]] 같은 맨손무술을 더 배우려고 했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도 그렇게 크지 않은 덕에 별 문제가 없었다. 문제는 딱히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이 부분을 당시 신생단체였던 해동검도가 크게 자극한 것. 특히 80년대는 [[국풍81]] 등 전두환 정권이 민족주의 강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던 때였거니와 지금보다 반일감정이 훨씬 심했기 때문에, 검도의 약점인 '쪽바리 일본무도를 배우지 말자.'는 슬로건을 해동이 터트리자 검도는 대내외적인 폭풍에 휩싸였다. 여기에 드라마 '[[무풍지대(드라마)|무풍지대]]' 등으로 크게 이름을 알린 해동검도의 총재 나한일의 후광과, 고구려 전통 검술이라는 드립, 민족검도라는 드립에 의해 해동검도는 대대적인 중흥기를 맞게 되었다. 대규모 사범 연수를 통해 적극적으로 세력확장에 나선 때도 이 즈음. 이후로 해동검도 수련자들은 2000년대 초반 나한일과 김정호의 분쟁 때문에 재판판결문이 해동검도의 진실을 파헤칠 때까지 이 점에 대해 자부심이 컸다. 당시 대한검도회장 이종림은 이런 후폭풍에 대응하고자 '검과 검술을 전해준 것은 우리나라인데, 일본으로 건너가 발전했으므로 결국 검도는 우리가 준 것을 다시 되찾아온 것'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. 이 주장은 이후 국제검도연맹의 회원단체인 대한검도회의 공식 입장이 되었다.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 해동검도에 버금가는 명백한 역사왜곡이다. 그래서 검도인들 사이에서도 무리수 주장을 과감히 철회하고 당당히 일본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. 해동검도 내의 분쟁으로 벌어진 실제 재판 과정에서 해동검도가 [[기천문]]과 [[심검도]]에서 갈라져 나온 유파이며, 해동검도의 실체는 '''현대에 만들어진 창작무술'''라는 것이 밝혀졌다. 지금까지 해온 고구려 기원 운운은 별다른 근거가 없는 [[개드립]]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말았다. 다음으로는 해동검도가 자랑으로 삼던 베기술이 '''[[일본군]] [[장교]] 나카무라 타이사부로'''가 창시한 [[나카무라류]]에서 유입되었고,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'''일본육군의 군도술'''인 [[군도의 조법]]에서 나온 것임이 밝혀진 것이다. 검도를 왜놈검술이라고 욕하던 자기들은 뒷구멍으로 '''2차대전에서 날리던 악질 왜놈 검술'''을 배우고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. 2010년 현재에 이르러서도 해동검도의 몇몇 관장들이 모여서 이 논리로 검도를 디스한 바 있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정보를 찾아 보기 쉬워져서 더 이상 해동검도측 논리가 잘 통하지 않는다. 그러나 법정 싸움까지 가서 다 까발려졌는데도 협회사이트에는 아직도 고구려와 사무랑 드립을 당당히 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